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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리뷰

맥락없는 컨셉의 처참함- 오마이걸 반하나 -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2018)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rW9r_1ys2ec

 

오마이걸 반하나라는 그룹은  목적과 성격이 정확히 오렌지 카라멜과 일맥상통한다.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멤버들을 모아서 여자 아이돌의 앨범 타이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곡을 발표하는 아이돌 유닛.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그룹의 아직 낮은 인지도를 인식한 듯 유닛으로 나올 때도 모그룹의 이름을 충실히 홍보한다는 정도일까.  

 

일회성으로 지은 그룹의 이름은 논외로 하더라도 도대체 오마이걸과 바나나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두 달 전까지 "나의 맘에 작은 정원"(비밀정원)을 노래하던 소녀들이 갑자기 나는 “바나나에 알러지가 있는 원숭이”라고 말하려면 최소한의 스토리와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훅을 밀기 전에 가사가 그 개연성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재치 있는 가사 대신 우리가 듣게 된 것은 빨리 클라이맥스로 달려가고 싶은 작사가의 초조함과 제한된 러닝타임에 도살된 스토리텔링뿐이다.

 

처음부터 갑자기 자신은 바나나를 먹지 못한다고 하고, 그래서 속상하다고 하고, 그러더니 갑자기 훅과 함께 나는 바나나알러지 원숭이라고 한다. 2절은 더욱 심각하다. 갑자기 바나나우유가 이 소녀들의 아픈 영혼을 달래주고 감동한 소녀들이 부르는 "바나나우유 있어서 행복해"라는 괴상망측한 가사가 청자의 귀를 때린다. 1절에서 갑작스럽게 나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라고 했으면 적어도 2절에서 바나나우유의 유용성 이상의 것들을 말했어야 한다.   

 

뮤직비디오 또한 아쉬운 점이 남는다. 많은 수의 오렌지카라멜의 곡들이 뜬금없는 컨셉을 뮤직비디오의 도움과 함께 소개해왔다. 그러나 이곡의 뮤직비디오는 초반의 정글과 후반의 우주선과 잠옷 파티, 그리고 그 안에서 팬서비스용 소녀들의 갖가지 표정과 리액션들뿐, 청자들이 어색한 콘셉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무성의하다. 이미지 변신과 그룹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었던 (적어도 이런것들을 노렸던) 곡이 부족한 디테일들 때문에 빛이 바랬다. 이곡의 유일한 승자는 바나나를 싫어할 수도 있는 지구 상의 모든 원숭이들도 아닌, 엉겁결에 홍보를 받게 된 바나나우유 회사도 아닌 이 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오마이걸 멤버들뿐이다. 

 

P.S) 이 곡 이전에 "하더라"라는 곡이 미니앨범에 있다. 소속사도 갑작스럽게 선회한 컨셉의 부담을 알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뮤직비디오에서 "하더라"의 몇소절을 소개하고 곡을 전개했었더라면 청자들도 컨셉에 적응하기 훨씬 수월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해도 2절부터 곡의 끝까지 바나나우유 찬가로 끝나버린 것은 큰 실수.